통영은 내가 계획한 여행지가 아니었다. 진주와 부산을 오가기 좋은 위치 때문이었을 뿐인데, 우연히 머문 골목에서 박경리 작가와 <김약국의 딸들>을 만났고, 통영이라는 도시가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.
우연이 선물한 통영과의 인연
통영에 묵기로 한 이유는 단순했다. 진주와 부산 사이에서 움직이기 좋은 위치였기 때문이다. 하지만 그 단순한 선택이 우연히 묵은 숙소로 이어졌고, 그 숙소는 삼도수군통제영 근처의 간창골이었다.
그저 골목을 걷다 발견한 '세병관',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박경리 작가의 생가터 안내판. 그 순간부터 통영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‘문학의 장소’로 바뀌기 시작했다. <김약국의 딸들> 속 배경이 된 골목과 장소들이 내 여행길과 겹쳐지면서 마치 이야기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.
<김약국의 딸들>과 문학의 공간
박경리 작가의 <김약국의 딸들>은 <토지>보다 먼저 집필된 초기 작품으로, 통영이라는 도시를 뼈대로 삼아 한 가문의 몰락과 다섯 딸의 삶을 그리고 있다. 이 작품은 단순히 가족 이야기 그 이상이다. 시대와 지역, 여성을 둘러싼 구조적인 억압이 동시에 녹아있다.
- 세병관과 간창골은 실제로도 소설 속 배경으로 등장
- 서문고개, 새터, 해저터널까지 통영의 지명이 문학 속에 녹아 있다
- 인물관계도가 필요할 정도로 복잡한 등장인물 구조
이 책을 읽으며 직접 발을 디뎠던 통영의 거리들을 다시 떠올리니, 마치 소설의 장면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. 통영이라는 공간이 박경리 작가를 통해 이야기를 걸어오는 느낌이었다.
개인의 삶이 비극으로 흘러가는 이유
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딸들의 삶이다. 각각 다른 방식으로 생을 살아가는 다섯 자매, 하지만 그들 모두 비극적인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. 왜 그랬을까? 단지 시대 때문일까? 여성이라서일까?
나는 그것을 ‘개인의 삶’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싶었다. 누군가의 의지나 사회의 틀에 얽매여 자신의 선택이 불가능할 때, 삶은 점점 무너져간다.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일 때 가장 강하다. 선택하지 못하는 삶은 결국 파국으로 향한다.
- 개인이 삶을 선택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내면의 단절
-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면 삶은 무거워진다
- 그럼에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찾는 것, 그것이 삶의 전환점
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, 요즘 내가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.
통영이 건넨 이야기
우연히 도착한 도시. 하지만 그 도시는 내가 찾지 않아도 스스로 다가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. <김약국의 딸들>을 읽고 나서, 통영이라는 도시는 그저 바다가 아름다운 항구도시가 아니라 수많은 인물들의 삶이 겹쳐진 ‘이야기의 도시’가 되었다.
문득 생각했다. 우리의 인생도 한 편의 장편소설이 아닐까? 지금 이 순간은 몇 장쯤에 위치한 걸까? 이미 정해진 결말로 향하는 이야기일까? 아니면 아직 전환점은 남아있는 것일까?
마무리 정리
박경리 작가의 <김약국의 딸들>을 읽고 나서, 통영은 더 이상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었다. 그곳은 한 가족의 역사와 비극,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겹쳐지는 이야기의 배경이었다. 나 역시 내 삶의 ‘소설’을 쓰는 중이다. 통영은 그 소설 속의 한 장면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.